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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 출석…법은 무엇을 원하는가

작성일
2022.01.23
조회
5

성폭력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 출석…법은 무엇을 원하는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서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 보며 증거를 다투도록 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는 걸까요? 아니면 가뜩이나 힘든 일을 당한 미성년자를 배려하는 측면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법정 증언을 하도록 하는 게 옳은 걸까요?

법조계와 여성계가 이 같은 논쟁으로 뜨겁습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로부터 시작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법정진술과 관련된 논쟁이 연초에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 논쟁, 쟁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법정출석이 관건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어 법정에서 가해자와 죄를 다투고 있는데요. 이 때 이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서 본인 경험을 증언해야만 증거로 인정되는지 여부가 논쟁의 핵심입니다.

 



 






형사소송의 핵심은 증거입니다.

피고의 범죄를 다투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진술은 핵심적인 증거의 하나입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여 판사 앞에서 증언한 것만 증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예외가 인정되는데 바로 이번 논쟁과 관련된 미성년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입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 1항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비디오녹화기 등 영상물 녹화장치로 촬영·보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 6항에는 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피해자나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 조력인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요약 정리하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진술 하면 이를 녹화했다가 재판 때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반복 진술하며서 겪는 2차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인데요.

◇ 헌재의 위헌 결정과 그 논리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성폭력처벌법 제30조6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라도 법정에 직접 나가서 한 말만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재판 모습/사진=뉴시스












초등학교 교사인 A씨는 2010~2011년 8세 제자를 수 차례 추행한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뒤 재판에서 피해자와 직접 증거를 다투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폭력처벌법의 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 영상을 문제삼았습니다. 재판부가 동영상을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는데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는데 피해자 진술 동영상을 1·2심 재판부가 유죄 증거로 채택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재판부는 피해자의 신뢰관계인에 대한 증인신문 등을 거쳐 피해자 진술 영상물을 유죄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피해자를 법정에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A씨는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아 그에 대한 반대신문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는데도 법원은 신뢰관계인의 진술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판결의 결정적 증거로 사용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진술이 맞는지 따져봐야 했는데 해당 조항 때문에 그러지 못해 방어권이 침해당했으니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헌재는 다수 의견으로 그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사진=게티이미지












6인의 헌재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은 인정하지만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못했다며 위헌 판단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은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러한 진술증거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그럼에도 심판대상조항은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고인의 원진술자(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권 행사 자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재판 결과를 피고인에게 설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체적 진실의 발견도 위협할 수 있다”면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화적인 방법’의 예시로 △성폭력범죄 사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증거보전(피해자의 법정 증언이 곤란한 경우 판사를 수사기관으로 불러 한번 진술한 뒤 이를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하는 것) 적극 실시 △피고인과 대면하지 않도록 중계장치를 통한 증언 △피해자 변호사제도 등을 들기도 했습니다.

헌재는 특히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려는 공익이, 제한되는 피고인의 사익보다 우월하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사진=게티이미지












◇ 3인의 소수의견 재판관, 2차 피해에 강한 우려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소수의견을 낸 3인의 재판관은 이 조항이 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 논거로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수사 초기 촬영된 피해자 진술 영상은 신용할만한 정황이 있고 △피고인은 조사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진술 내용을 탄핵할 수 있으며 △재판부 또한 ‘수사기관에서 녹화된 피해자 진술’이라는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증거로 쓸지 말지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피고인의 권리 보장’과 ‘성폭력 미성년 피해자 보호’ 사이의 조화를 도모한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또 관련 조항은 성폭력범죄의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가 불충분하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한 것인데,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을 가볍게 볼 수 없으며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입법자가 마련한 장치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헌재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특히 성폭력 범죄는 범행 당시 특별한 물적 증거가 남지 않거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중요한 사건이 다수라고 지적하고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엔 피해자의 법정 증언을 두고 신빙성에 대한 격렬한 탄핵이 이뤄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피해자가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복기하고 격렬한 탄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범죄 행위만큼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반발하는 시민단체…왜? 

헌재 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를 비롯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인권 단체들은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몰이해 속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헌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방어권을 이유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을 외면했다는 주장입니다.

여성단체들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를 퇴행시키는 결정이라면서 미성년자나 지적 장애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전문적인 진술 조력인이 장시간 노력하지 않으면 진술을 얻기가 힘들 뿐 아니라 법정에 출석하는데도 제약이 많기 때문에 헌재 결정으로 관련 재판에서 가해자가 무죄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사진=게티이미지












법정에서 가해자가 아이에게 “너 거짓말 하는 거 아냐” 등 반대 심문을 할 텐데 아이가 이를 견뎌야 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미성년 성폭력 가해자 대부분은 피해자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이미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해자의 진술권 보장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가 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글 : 법률N미디어 김율희 객원 에디터